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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희 사진작가는 한국의 톱클래스의 사진작가중의 한명입니다.

그녀가 어떻게 성공을 했는지, 그녀의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무척 궁금하네요.

 

# 목차

 

* 조선희 어린 시절

* 조선희 컨닝 사건

* 조선희 서수민의 친구 관계는 대학 시절부터

* 조선희, 다른 사람들로부터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며

* 조선희 이정재 정우성의 관계는

 

사진작가 조선희는 1971년 경상북도 칠곡(왜관)에서 태어납니다(조선희 고향). 올해 45살이죠(조선희 나이).

(조선희 학력 학벌) 연세대학교 의생활학과 졸업

(조선희 프로필 및 경력) 

 

한겨레21 길 프리랜서 사진작가

1995년 네오룩 이매진 사진작가

1996년 엘르, 보그 패션지 화보 광고사진 촬영

2004년 조아조아 스튜디오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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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희 어린 시절

 

조선희는 스스로를 ''왜관촌년'이라고 부를 정도로,

시골 출신임을 숨기지 않습니다.

 

또한, 아버지가 어릴 때 돌아가셨고, 어머니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에, '애정결핍'은 그녀 평생의 화두였던 것 같습니다.

 

조선희: "제가 열네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 때문에 어머니가 왜관시장에서 만물상회를 열어 온갖 물건을 다 팔았죠. 제가 다섯 남매중에 셋째인데, 어머니는 아주 억척스러워서 남들이 가게 문을 닫은 뒤인 새벽 3~4시에야 가게문을 닫았고, 그리고 2~3시간 자고 난뒤에는 다시 문을 열었을 정도였죠."

 

결국 조선희는 바쁜 어머니 대신에 조부모의 손에서 성장하게 됩니다.

 

 

조선희 사진

 

조선희: "어릴 때부터 흙바닥에서 구슬치기를 하면서 놀았어요. 그때는 영락없는 사내아이였죠."

 

조선희: "당시에는 남아 선호 사상이 강하던 시절이라 오빠는 버스비 60원을 받아 학교에 다녔는데, 저는 걸어 다녔어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오히려 저를 더 강하게 키웠던 것 같아요."

 

조선희: "조금 성장한 다음에는 어머니 일을 도와줘야했어요. 짐 자전거로 물엿 24kg을 배달하면 1천원을 주셨어요. 또한, 가게에서 물건을 팔면 자기가 판 물건 값의 5%를 주셨고요. 그렇게 일한 만큼 돈을 받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제대로 된 경제 관을 가질 수 있었어요."

 

참고로 조선희가 초등학교 다닐때 공부를 잘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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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희 컨닝 사건

 

조선희: "친한 친구와 죽이 맞아, 학교 시험시간에 서로 가르쳐주기로 했어요. 일명 컨닝이었죠. 그렇게 부정행위를 했는데, 제가 전교 1등을 한 거예요. 원래 학교 성적이 중간정도였는데, 저도 놀라고 선생님이나 친구들도 모두 엄청 놀랐죠."

 

조선희: "결국 그 시험 성적으로 큰 칭찬을 받았는데, 그때 처음으로 '주목 받는 게 이런 거구나, 사랑 받는 게 이렇게 기분 좋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이후에 열심히 공부하지 않을 수가 없었죠."

 

확실히 사람들의 주목이란 '커다란 후원'이 아닌가 합니다.

조선희 역시 주목을 받지 못했다면 평범한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이후 조선희는 연세대 의생활학과에 들어가게 됩니다.

 

조선희: "대입 1지망에 떨어졌는데, 어머니가 재수는 시켜줄 수 없다고 단언하셨어요. 결국 2지망한 연세대 의생활학과에 들어갔죠. 그때 어머니가 입학 기념으로 거금 50만 원짜리 니콘 FM2를 사주셨어요. 제 인생의 첫번째 카메라였죠."

 

조선희: "2지망으로 들어간 의상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그 대신에 고등학교 시절 좋아하는 선생님이 사진반 동아리를 담당하셔서, 사진에는 관심이 많았어요."

 

결국 조선희는 사진 동아리에 가입해서 열심히 활동합니다.

오늘날 조선희 사진작가의 밑거름이 이때 쌓인 것이 아닌가 하네요.

 

 

참고로 조선희가 성공한 다음에 찍은 톱배우 사진들

조선희 신민아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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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희 신민아 화보 사진

 

조선희: ""민아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기가 셌다. 민아는 악동 같은 이미지였는데, 그때 우리집에 놀러 온 기념으로 사진기를 선물로 주었다. 하지만 그래도 친해지기가 힘들더라."

 

신민아: "내가 살갑지 못한 성격이라 사람들이 나를 자꾸 오해한다."

 

조선희: "보통 사진을 찍으면 조금씩은 보정 작업을 거치는데, 민아는 진짜 몸매가 끝내주더라. 보정작업이 필요없는 몸매다."

 

 

조선희 탕웨이 사진

 

* 조선희 서수민의 친구 관계는 대학 시절부터

 

참고로 조선희와 서수민(프로듀사 PD)는 대학 시절 같이 자취 생활을 할 정도로 절친한 친구관계입니다.

 

서수민 피디: "조선희와 연세대 재학시절 사진 동아리를 같이 했다. 하지만 나는 1990년대 초반 당시 돈으로 60만원 하던 수동 카메라를 살 여유가 없어서, 결국 연극반으로 동아리를 옮겼다."

 

서수민 피디: "조선희가 이화여대 앞 웨딩숍들을 찾아다니며 “나를 써 달라”고 홍보했다. 1994년인가, 한번 웨딩 사진을 찍게 되었는데, 당시 조선희는 웨딩 사진의 규격화된 수치를 벗어난 파격적인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을 본 신부 아버지가 크게 화를 냈고, 결국 조선희는 돈을 환불해 주었다."

 

 

이 부분에서 2가지를 알 수 있는 것 같네요.

젊은 시절에 불과 60만원으로 인생의 향방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다는 점과, 조선희가 젊은시절부터 파격적인 사진 찍기를 좋아했다는 점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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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희, 다른 사람들로부터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며

 

이후 조선희는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 3년동안 김중만 작가의 어시스턴트가 되어서 배우게 됩니다(조선희 김중만 스승과 제자 관계).

 

조선희: "전 사진을 전공하지 않았기에 사회에 선배나 연줄이 전혀 없었어요. 결국 10개월동안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김중만 선생님께 찾아갔어요."

 

조선희: "그때는 정말 사진에 미쳤어요. 꿈에서도 사진을 찍을 정도였죠. 꿈속에서 얼마나 셔터를 눌렀는지, 아침에 일어나면 어깨가 아플 정도였어요. 뭘 하든지 미쳐야 하는 것 같아요."

 

확실히 무슨 일에 미친 사람을 누가 당할까 싶네요.

 

 

조선희는 김중만으로부터 3년을 배운 다음에 뉴욕으로 떠납니다.

 

조선희: "김중만 선생님 어시스턴트를 3년쯤 하면서 모은 돈, 2천만원을 들고 1998년 무작정 뉴욕으로 갔어요. 거기서 사진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두달 정도 지내니까 제가 가진 돈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거기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입학 준비를 하는게 시간 낭비같았죠."

 

결국 조선희는 남은 돈을 털어서 사진 장비를 사서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어머니 이름으로 대출을 받아서 서울 압구정동에 스튜디오를 차리게 되었죠.

 

조선희: "당시 IMF 외환위기여서 문을 닫는 스튜디오가 많아서 싸게 빌릴 수 있었어요. 물론 사람들은 경기도 안 좋은데 스튜디오를 연다고, 저보고 미쳤다고 했고요."

 

조선희: "결국 돈을 아끼기 위해 스튜디오에서 살게 되었어요. 스튜디오가 지하에 있어서 한겨울에는 너무 추웠어요. 천장은 무척 높고, 사람의 온기는 없고, 한 2년 동안을 그렇게 스튜디오에서 살았는데, 그때 많이 춥고 배고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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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희 이정재 정우성의 관계는

 

조선희는 2002년이 되어서야 비로서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지게 되면서, 경제적인 궁핍을 모면하게 됩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인물 사진으로 아주 유명하고, 또한 여성 사진 작가로도 무척 유명하죠(한국의 탑클래스의 사진작가들 대부분이 남자들임).

 

 

조선희: "오히려 내가 여자라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예를 들면, 클라이언트가 늘 남자 포토그래퍼들이랑 일하다가 "이번에는 여자 사진 작가와 작업해볼까? 여자의 감수성은 뭔가 다르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을 때 여자는 거의 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더 좋았다."

 

확실히 여자들이 성공하기 힘든 포토그래퍼의 세계에서 성공한 다음에는 이런 장점이 있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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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희의 데뷔 초기에 사진 촬영을 했던 이정재의 고백입니다.

 

이정재(탤런트): "조선희 작가와 많이 싸웠다. (조선희는) 하고 싶은 것이 굉장히 많았다. 물 속에 들어가라고 하고 페인트를 얼굴에 부으라고도 하고, 당시에 굉장히 여러가지 색다른 시도를 하려고 했는데, 간혹 여기까지 안 해도 되는데 그런 생각도 들었다."

 

조선희: "데뷔 초기에는 12시간씩 사진을 찍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큰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정재씨나 하용수 선생님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조선희: "그 당시에는 이정재씨밖에 안 보였다. 결국 촬영을 하고, 나는 한 사흘을 앓아누웠다."

 

정우성(탤런트): "조선희 작가는 좌충우돌 다혈질에 자신이 원하는 것은 다 찍어야 한다. 그런데 엄마가 된 이후에 더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마치 한 팔에 아들을 잡고 다른 한 팔에 카메라를 잡은 것처럼 보인다."

 

조선희가 얼마나 악바리처럼 작업을 햇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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