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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오은미 러브스토리 및 인생이야기

 

차범근처럼 오해를 많이 받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차범근 아내 오은미는 '치맛바람'의 대명사로 한때 언론으로부터 공공의 적이 되기도 했습니다. 언론에서는 종종 대필 의혹까지 거론하면서 오은미와 차범근 부부를 흠집내기를 하죠.

 

하지만 그런 언론의 공격이 과연 정당한 공격이었을까요?

 

그런데 문제는 차범근과 오은미 부부가 그런 오해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마 오래전부터 이 부분을 포기를 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네요.

 

그외에 차범근의 감독으로서의 역량 평가 등을 한번 언급해 보려고 합니다.

 

차범근 오은미 부부 사진

 

차범근은 1953년 5월 22일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납니다(차범근 고향).

올해 62살이죠(차범근 나이).

(차범근 종교 기독교)

(차범근 학력 학벌) 화성화산초등학교, 경신중학교, 경신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차범근 프로필 및 경력) 1971년 청소년대표 선수

1979.07 ~ 1983.06 SG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독일)

1978.12 ~ 1979.06 다름슈타트 (독일)

1983.07 ~ 1989 TSV 바이엘 04 레버쿠젠 (독일)

1986년 멕시코 월드컵 국가대표

1990년 차범근 축구교실 이사장

1990 ~ 1994.11 현대호랑이축구단 감독

1997년 ~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국가대표팀 감독

1998.07 ~ 1999.12 핑안팀 (중국) 감독

2004.01 ~ 2010.06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

 

'국제 축구 역사&통계 연맹'이 선정한 "20세기 아시아의 선수"로 뽑혔고, 1999년 ‘월드사커’지는 20세기 축구에 영향을 미친 100명의 인물에 포함됩니다.

 

외국에서는 이렇게 높은 평가를 받지만, 한국에서의 평가는 그리 높지 않습니다. 차범근이 선수로 활약하던 시절에는 해외 소식이 잘 전달되지 않았고, 감독으로서는 큰 빛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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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젊은 시절 과거 사진

 

 

(지금보면 좀 촌스럽죠)

 

축구 선수를 은퇴한 차범근은 1997년 프랑스 월드컵 국가대표 감독을 맡습니다. 하지만 2경기만 치르고, 중도 해임이라는 초유의 불명예를 당하게 됩니다. 당시 유럽 언론에서는 엄청나게 대서특필되었죠.

 

당시 대표팀 선수들은 차범근의 무리한 '작전'에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는데, 이것을 언론이 확대재생산을 합니다. 결국 이것과 당시의 성적(멕시코전 1대 3 패배, 네덜란드전 0대 5 패배)으로 그는 중도 경질이 되고 말죠.

 

사실 차범근의 작전이 당시 한국 선수들에게 무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차범근이 한국 선수들의 수준을 너무 높게 잡은 것이죠. 스타 플레이어 출신의 감독이 종종 범하는 오류를 그 역시 피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이상과 현실에 대한 갭은 스스로가 자각하고 고쳐나가야 하는데, 차범근에게는 그럴 기회가 없었죠. 

 

차범근의 '승부조작'발언과 더불어 대한축구협회에서는 차범근을 5년간의 자격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립니다. 차범근은 당분간 한국에서 활동을 하지 못하면서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그리고 후에 수원 삼성 감독으로서도 활동하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호불호가 갈립니다.

 

 

그렇다면 차범근의 감독으로서의 역량이 과연 떨어질까요?

차범근의 경우는 자신의 장점을 살리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차범근은 당시 선진 축구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났고, 전술을 보는 눈이 상당히 날카로웠습니다. 아직도 명승부라고 일컬어지는 '도쿄 대첩'은 그가 감독으로서 만든 경기였죠.

 

1997년 9월 28일 도쿄 국립 경기장에서 한국은 일본에게 첫득점을 내주고 상당히 고전하게 됩니다(고정운의 패스미스가 실점으로 연결됨). 그러자 일본팀의 가모 슈 감독은 선제골을 지키기 위해서 수비전술을 펼쳤고, 이를 눈치챈 차범근은 수비수 홍명보까지 공격에 가세시키면서 후반 40분과 43분 연달은 득점으로 마침내 역전에 성공합니다.

 

전술을 보는 차범근의 눈이 날카로웠기에 가능한 결과였죠.

(사실 당시 차범근이 이끌었던 월드컵 대표팀의 아시아 예선전의 성적은 역대 최고였습니다. 박종환의 경질로 갑자기 감독은 맡은 차범근이었지만, 일본, 아랍에미리트,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을 맞아 6승 1무 1패의 조 1위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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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차범근의 역량을 파악해보면, 전술에 대한 눈은 날카로웠지만, 선수들을 이끄는 면은 좀 부족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완전한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기에, 이런 차범근의 장점을 잘 활용했더라면, 한국 축구가 한단계 더 발전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또한 차범근과 선수들과의 불화는 언론에서 확대 재생산한 면이 있었기에 더욱 아쉽죠.)

 

차범근의 사람을 보는 눈에 대해서 사족을 덧붙이지만, 성인을 다루는 태도와 유망주를 발굴하는 눈이 완전히 다릅니다.

차범근 축구상으로 발굴된 유망주들이 바로 박지성, 이동국, 기성용, 김두현 등이죠. 아마 성인팀(국가대표과 프로 축구팀)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어린 유망주들에게는 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대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차범근 부인 오은미는 차범근보다 3살 연하입니다(차범근 부인 나이).

차범근을 만날 당시에 연세대학교 종교음악학과에 다니고 있었습니다(차범근 부인 직업)(오은미 종교 기독교).

대학교 1학년때(1976년경) 친구의 부탁으로 미팅에 대타로 나가면서 차범근을 만나게 됩니다. 짧은 시간에 둘은 연인관계로 발전했고, 곧 오은미는 76년부터 차범근의 약혼녀로 기자들에게 고초를 당합니다.

 

차범근 와이프 오은미 최근 사진

 

여기서 잠깐 당시 기자들의 관행을 언급해야겠네요.

원래 70~80년대 기자들의 엘리트 의식은 대단했습니다. 무식한(?) 선수들을 취재할때는 그들의 우월의식이 한층 더 고양되었죠.

그래서 기자들의 취재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기자들에게 떡값을 돌리기도 했는데, 차범근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차범근은 기자들의 공격을 더 자주 받게 되었고, 오은미에게도 그 여파가 미치게 되었죠.

 

(일례 - 1998년 차범근이 축협으로부터 징계를 먹고 중국으로 갑니다. 그때 오은미가 인터뷰때 이런 말을 합니다. "어렵지만 모아둔 돈으로 살겠다." 그런데 기자는 기사를 이렇게 내보내죠. "모아둔 돈 있어서 한국에 있을 필요 없다.")

 

어쨌든 차범근은 공군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독일로 진출하게 됩니다.(여기에도 우여곡절이 많았죠. 공군참모총장의 2년뒤 제대라는 약속을 믿고 입대했지만, 군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죠.)

 

차범근과 오은미는 차범근이 공군에 입대해 있던 1977년 결혼식을 올립니다(차범근 배우자). 정말 나이 어린 신부였네요. (남편인 차범근 역시 겨우 25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리고 둘은 딸 차하나와 아들 차두리, 차세찌를 낳게 됩니다(차범근 자녀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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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오은미 웨딩 사진(뒷쪽에 허정무도 보이네요.)

 

3남매가 각각 다른 길을 걸어가는 것이 재미있네요. 첫째 차하나는 번역가로 활동하고, 둘째 차두리는 잘 알려졌다시피 축구선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차하나 사진)

 

차범근 딸 결혼 사진

 

그리고 막내인 차세찌는 원래 TCIS(대전 국제학교)를 졸업하고 2009년 해병대에 자진입대를 합니다. 형과 달리 축구선수보다 방송사 프로듀서가 되는 것이 꿈이죠. 그리고 연예계 데뷔도 고려하고 있기에 CF 모델 제의도 흔쾌히 수락하는 편입니다. 현재는 스위스에 머물면서 공부를 하고 있죠(차세찌 직업 학생).

 

(차세찌 사진)

 

아무튼 차범근은 1979년 7월 독일로 진출하게 됩니다.

지금이야 차범근의 화려한 성공을 다들 알고 있지만, 처음부터 현지 적응이 쉬웠던 것은 아니었죠.

 

오은미: "애들 아빠(오은미가 남편 차범근을 부르는 지칭)에게 가장 큰 위기는 서독에 간 직후였다. 한국을 떠날 때의 부푼 기대와 달리 안정된 선수자리를 찾지 못해 마음고생이 심했다. 꽃다발을 목에 걸고 김포공항을 떠났지만 도착 후 밀어주기로 약속한 프랑크푸르트의 슐테 조감독은 막상 눈앞에 나타나자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차범근: "도착 직후 한동안은 나를 참담하게 했다. 숙소부근에서 연습을 하는 오쿠데라(일본출신 선수로 당시 IFC 쾰른팀 소속)가 한없이 부러웠다. 나는 지옥에서 천국에 사는 오쿠데라를 구경하며 눈시울을 적셔야 했다. 때로는 아마추어팀의 연습게임에 끼어들어 몸을 풀며 답답한 마음을 달랬다."

 

차범근: "입단 약속을 받고 갔지만, 처음의 대우는 그렇게 형편이 없었다. 나중에 팀에서 활약을 하고 난 뒤에야 제대로 대우를 해줬다."

 

차범근: "집사람은 곱게만 자란 탓으로 결혼 후에도 부엌살림이 좀 서툴렀다. 그 곱던 손이 물과 기름에 데고 또 칼에 다쳐 거친 손이 됐다."

 

오은미: "한동안은 그에게 뭘 먹일까 영양관리 하는 데만도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렇게 집중을 하니까, 훈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선수가 오늘은 뭘 먹고 싶다고 생각하고 오면 바로 그 음식이 준비돼 있어 서로 놀라는 때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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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오은미 젊은 시절 사진(차범근은 바가지 머리를 한동안 고집했군요.)

 

당시에는 독일에 교민도 별로 없을 때였죠.

타국에서의 외로움을 극복하고, 당시 세계적인 선수들 사이에서 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차범근, 그리고 그런 남편에게 제대로 된 요리를 만들어주기 위해서 노력했던 오은미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오은미: "종종 내성적인 애들 아빠의 얼굴에서 우수같은 걸 본다. 언젠가는 동료들이 볼을 잘 주지 않아서 찬스를 놓친 일이 있다고 독백하는 말도 들었다. 프로선수는 내일을 예측 못하고 하루하루 있는 힘을 모두 쏟는다. 인기가 오르면 그걸 감당하기 위해 피눈물 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기쁨은 잠깐이고 힘든 시간이 더 많다."

 

아마 차범근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 오은미가 아닐까 하네요.

그렇게 차범근은 분데스리가에서 차츰 자리를 잡지만, 인기를 얻게 되면서 또다른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바로 수많은 팬들로부터의 팬레터였죠.

 

결국 집으로 도착하는 팬레터에 오은미가 대신 답장을 쓰게 됩니다.

이후 차범근의 매니저로 오은미가 활약하게 되는 시초라고 할 수 있죠.

 

차범근 오은미 부부 사진

 

그리고 차범근이 독일에서 한국으로 귀국한 뒤에 오은미는 본격적으로 매니저로 나서게 됩니다. 

1997, 8년 차범근이 월드컵 대표팀 감독이 되었을 때, 오은미가 나서서 차범근의 일정을 조정하게 되죠.

 

오은미: "(남편을) 푹 쉬게 하고 싶은데 도대체 짬이 나질 않네요. 꼭 필요한 일정만 잡는데도 너무 빡빡하다고 차 감독 신경이 날카로워질 때는 제가 더 울고 싶어요. 저 사람은 집중을 못하면 일을 못하는 성격이라 제 스스로 수비벽을 단단히 치는 꼴인데, 그걸 여자가 너무 설친다고 오해하는 분들도 있는 모양이에요."

 

차범근의 약혼녀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는 단순한 가십성 스캔들의 대상이었다면, 20년 후에는 '치맛바람'의 대명사로 쓰이게 되죠. 특히 차범근과 일정을 잡지 못한 기자들일수록 그런 비판이 높았습니다.

 

차범근 가족 사진

 

차범근의 칼럼은 따뜻하기로 유명합니다. 

차범근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쓴 글입니다.

아주 따뜻한 글이기에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죠.

(김수환 추기경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팽목항의 손석희를 인용하는 부분이 아주 절묘하네요.)

 

하지만 차범근이 쓰는 대부분의 글은 부인 오은미가 쓴 것이라는 사실은 축구계의 공공연한 비밀에 해당하죠.

이미 독일 시절부터 오은미가 차범근 대신에 팬레터에 답장을 해주었고, 그것이 쭉 이어져오는 것이죠.

 

확실히 본인이 쓴 것이 아니기에 '대필'은 맞지만, 이런 경우(부부 사이의 일)는 예외로 두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합니다.

 

 

차범근은 세계적인 선수로, 그리고 그 이후에도 축구 감독과 해설자, 유망주 발굴에도 큰 업적을 남겼고, 오은미는 그런 남편을 내조하면서 남편의 성공에 이바지합니다.

 

차범근이 이런 말을 했죠.

"아내가 없었다면 오늘의 나도 없었다."

결코 과도한 공치사로 들리지 않네요.

 

 

사실 차범근은 아내의 공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애처가를 넘어서 공처가의 수준이죠.

 

차범근: "세상에서 두리엄마가 젤 무서워. 두리도 엄마를 젤 무서워해. 아들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은 두리엄마밖에 없지."

 

차범근: "오 여사(차범근의 아내 오은미에 대한 지칭)가 없으면 우리 집에 포르쉐·투아렉·벤틀리 등 자동차가 종류별로 다 있을걸! 우리는 돈을 벌어도 마음대로 못 써. 좋은 차를 구경 갔다가 그냥 와. 축구장 만들어준다니까 그냥 참고 살아."

 

사실 차범근은 지난 2006년에 경기도 연천에 6만평(19만8천m2)이나 되는 땅을 샀습니다. 엄청난 땅이긴 한데, 부동산 투기를 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축구장을 건립하기 위해서죠(차범근 재산 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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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축구장은 수입이 없잖아? 수십억원씩 들여 만들어도 운영비조차 나오지 않는대. 두리 엄마 말로는 그냥 나와 두리에게 선물하는 거래. 그러니까 두리 엄마가 자기 가계부 이외의 돈만 줘. 그거 가지고 언제 운동장을 만드냐고! 다 지어지면 모두 놀러와요. 나이 들고 그러면 월드컵 할 때마다 모여서 같이 응원하고 맛있는 거 해서 먹자고. 생각만으로도 즐겁다."

 

차범근: "(2006년에) 부지를 마련하고 난 뒤 석 달 동안 아내의 말을 정말 잘 들었을 정도로 행복했다."

 

이렇게 차범근 집안에서는 모든 수입을 오은미가 관리합니다. 차범근이 이렇게 꽉 잡혀 사는데도 '꿈'이 있고, 그 꿈을 위해서 아내가 노력해주기 때문에 행복할 수가 있죠.

 

(만약 차범근이 아내로부터 억압을 받는다면, 자존심 강한 차범근 성격에 진작에 이혼을 했겠죠. 차범근이 이렇게 사는 것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차범근: "건립된 축구장은 선수 및 동호인의 축구 연습 공간일 뿐만 아니라 부모와 자녀가 함께 와서 운동도 하고 자고 가는 휴식 공간으로도 활용할 계획이야. 월드컵 할 때 모여서 응원하고 축구하고 맛있는 것 해 먹자. 개인해설도 해주겠다."

 

차범근의 축구장 운영 계획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코 돈을 벌겠다는 목적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에게 꿈과 행복을 주기 위해서죠.

게다가 외부 투자를 전혀 받지 않고 차범근 가족의 힘만으로 만들 계획이기에, 축구장 완공 시점은 좀 멀 것 같네요.

 

 

어쨌든 차범근은 아내에게 꽉 잡혀 살고 있는데, 아내 오은미의 생각은 어떨까요?

 

오은미: "부부라면 서로의 삶을 공유하는 것이 아닌가 해요. 한가지 목적을 향해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열심히 노력하는 것, 하나의 일을 둘이 나눠하며 이고지고 가는 것이죠. 제가 하는 일이 '행복한 부부'를 위해서 당연히 할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들 부부는 한곳을 향해 같이 달려가는 부부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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