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당 정치깡패 이정재 사형 사진 나이

 

 

5.16 군사정변은 하루아침에 권력의 방향 추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자유당 정권 당시 나는 새도 떨어트렸다던 정치깡패 이정재는 군부에 구속 된 지 나흘 만에 혁명재판을 앞두고 서울 시내 한복판에 "나는 깡패입니다. 국민의 심판을 받겠습니다."라고 적힌 플랜카드와 함께 조리돌림 당하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는데요.

 

 한때 씨름판의 장사에서 경찰로, 해방 후 주먹에서 정치인으로 끊임없이 변모를 꾀했던 그는 반세기 전 혼란의 서울에서 어떤 최후를 맞았을까요. 그는 결정적 순간에 내려놓을 줄 알았던 그의 처세는 정국 혼란의 상황에서 전에 없던 자리를 그에게 만들어줬으나, 타협할 줄 몰랐던 성격은 한순간에 그를 몰락의 절벽으로 몰아 세웠습니다. 

 

 

 

 

 

 

 

 

한편 고향 이천에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난 이정재는 인근 지역에서 알아주는 '씨름왕'이었다고 하는데요. 전국규모로 이천에서 개최된 씨름대회에 출전, 상금으로 나온 황소 10마리가 모조리 그의 차지가 됐다는 일화는 오늘까지도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전해지기도 하고 있습니다. 

 

 

 

 

부유한 집안 형편과 부친의 든든한 지원으로 상경, 중앙고보를 거쳐 휘문고보를 졸업한 후 신흥대학교(경희대학교의 전신)에 진학할 만큼 당대의 엘리트였던 그는 태평양전쟁 발발 후 징용을 받고 반도의용정신대로 피신하면서 김두한과 인연을 맺었다고 전해지기도 하는데요. 

 

 

고학력자인 그를 눈여겨본 김두한의 추천으로 경찰이 된 뒤로는 그의 세력을 비호하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경찰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혀가던 중 해방을 맞았습니다. 당시 해방직후 혼란기에 잠시 경찰을 떠나있던 그는 이내 다시 복직, 정부 수립 후 반민특위 특별조사위원회 서기이자 특경대원으로 친일파 색출에 나서기도 했었는데요. 

 

 

 

 

경찰 복무 당시에도 그는 친일과는 거리를 둔 독특한 조선인 경찰이었고, 친일경찰의 전횡을 옆에서 똑똑히 지켜본 바 있었기에 주어진 임무에 더욱 매진했으나 1949년 6월 6일, 이승만 정권의 조직적 방해에 위원회가 와해되자 사직하고 처가가 터를 잡고 있던 동대문에서 포목점을 경영하며 세상과 조금 거리를 두고 상인으로 눌러앉으려 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이정재는 부와 권력을 등에 업고 나자 명예가 간절해졌다고 하는데요. 13대째 터를 잡고 지내온 고향 이천을 지역구 삼아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야망을 갖게 된 그는 그길로 지역에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붓기 시작했습니다.

 

 지역 내 296개의 부락을 일일이 방문하며 애로사항을 보고받고 대소사를 처리하는가 하면 관내 학교에 발전기금과 장학금을 지원해 인재육성을 꾀하고, 지역 방문 때마다 당시 귀한 물건이었던 고무줄을 무상으로 주민에게 지급하는 등 표밭을 튼실히 다져놓았다. 문제는 앞서 언급했던 자유당 정권의 전횡에 염증을 느낀 국민 정서가 이정재의 ‘아버지’ 이기붕에게도 예외가 없었다는 것. 

 

 

그는 자신의 지역구인 서대문구에서 당선이 불투명해지자 조상의 선산이 있는 이천으로 눈을 돌려 출마를 시도했고, 수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상황에 처하자 이정재는 강하게 반발했으나 권력의 2인자 앞에 그의 완력과 수완은 무용지물. 결국, 출마를 포기한 그는 동대문 패권 또한 내려놓고 북악산 자락의 폐가를 얻어 주택을 짓고 은둔생활에 들어갔다고 하는데요. 

 

 

 

 

 

 

 

4·19혁명 당시 정권 측 진압에 자신의 수하들이 가담한 탓에 스스로 검찰에 출두해 정치테러의 원흉으로 조사를 받고 풀려난 그는 이듬해 5.16 군사정변 세력에 다시 체포되었습니다. 자유당 정권의 주요인사들이 대거 구속되며 생존을 위한 폭로성 증언이 이어지며 수면 위로 떠오른 ‘화랑동지회’ 사건으로 인해 사형을 선고받은 그는 

 

 

이미 앞선 두 차례의 구속에서 자신의 죗값에 대해 비교적 적확하게 인식하고, 상황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유언 중 “나도 잘못은 있기에 억울하단 말은 안 한다”고 말한 대목은 이 같은 그의 상황 인식을 반증이기도 합니다. 1961년 10월 19일 서울형무소 형장에서 처형됐을 때 그의 나이 44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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